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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 생각

CS(Customer Satisfaction, Customer Service)에 대하여

추어탕
비 오는 날 길을 걷다 문득 허기짐을 느끼고 들어간 추어탕 가게에서 얻게 된 의외의 소소한 삶의 여유

 

  신논현역 근처에서 치과 치료를 받고 오는 길에 추어탕 가게가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문득 오늘 아침을 먹고 난 이후 아무것도 먹지 않았음을 깨닫고서 비도 추적추적 내리는데 왠지 추어탕이 먹고 싶어졌다. 물론 그 근처에는 커다란 매장에 스테인리스로 도배가 된 깨끗하고 세련된 프랜차이즈 음식점이 즐비하지만, 그런 곳은 굳이 내가 즐겨 찾지 않기도 하고, 오늘 같은 비 오는 날에는 왠지 추어탕이 제격이라는 생각에 집으로 돌아가던 발걸음을 다시 돌렸다.

 

  추어탕 가게에 들어서고 종업원 분들의 환영까지는 절대로 바라지 않지만, 그래도 어느 한 분이라도 인사는 해주실 줄 알았는데 아무도 나를 반겨주지 않았고, 내가 알아서 QR코드를 찍고 멀뚱멀뚱 서 있다가 그래도 아무도 맞아주시지 않길래 소심하게 연세가 있어 보이시는 종업원 아주머니께  "어디 앉으면 되는 건가요?" 하고 물었고, "자리 많으니까 아무 데나 앉으세요"라는 그분의 답변을 듣게 되었다. 혼자 와서 자리를 많이 차지하면 민폐가 되지 않을까 하는 이유에서 여쭤봤는데 별로 그 부분에 대해서는 괘념치 않으신 것 같았다.

 

  추어탕을 주문하고 앉아서 가만히 매장을 둘러보았다. 보통 강남 한복판에 있는 매장이라면 화려하거나 정갈한 분위기일 거라고 생각하는데, 벽면 구석에는 검은색 곰팡이도 약간 있었고, 종업원 아주머니께서 테이블을 한 번 닦아주셨지만 그래도 추어탕 국물 자국이 남아 있어서 물티슈로 내가 한 번 더 닦았다. 참 신기했다. 나는 물론 이런 부분에는 다소 무감각한 편이지만 요즘은 이런 부분들에 있어서 예민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굉장히 많은데 특히 이곳 강남 한복판에서 이런 곳이 있다니 의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장에는 손님들이 많았고 다들 나와 같이 별로 신경 쓰지 않아 보였다.

 

  기다리던 추어탕이 나왔는데 공깃밥이 없다. 그래서 또 소심하게 "저기여~"하고 불렀는데, 종업원 아주머니와 분명 눈이 마주쳤는데도 드시던 옥수수를 계속해서 드시면서 말씀이 없으셨다. 일어나서 종업원 분께 다가가 "공깃밥은 따로 주문해야 하는 건가요?"라고 묻자 "기다리세요! 갖다 줄게요!"하고 매장 중간에 있던 공깃밥 공기들이 들어있는 보온 통에서 공깃밥을 가져다주셨다.

 

  약간 민망했음에도 추어탕은 너무 맛있었고, 창밖으로 들리는 빗소리는 너무나 운치 있어 마치 조선시대 주막집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었다. 분위기에 취해 결국 막걸리를 시키고 추어탕을 맛있게 먹고 있었다. 그러던 중 구석 테이블에 손님 네 분 일행이 들어와서 한 테이블에 같이 앉았다. 물론 종업원 아주머니께서 백신 접종 여부를 철저히 확인하셔서 방역수칙 위반사항은 없었다. 그 일행 중 한 분은 그 종업원 아주머니와 어느 정도 친분이 있어 보였고, 서로 웃으면서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종업원 아주머니는 아까처럼 자리로 돌아가 옥수수를 드시고 있는데 그 손님이 "이모~"하고 부르는 것이었다. 그리고 종업원 아주머니가 테이블로 가자 아주머니에게 "고생 많으세요" 하면서 슬며시 만원을 내미시는 것이었다. 종업원 아주머니도 "아이고 감사해요~" 하면서 뒷 주머니에 돈을 챙기시고는 갑자기 5초 정도 행복해하는 표정으로 춤을 추셨다. 그리고 손님에게 덕담을 하시고, 손님 일행에게 "위하여 한 번 외치셔야죠~" 하면서 분위기를 살짝 즐겁게 만들어 주었다.

 

  나는 처음에 종업원 아주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여기 매장 사장님은 자선사업가이신가 하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심지어 주방에 있는 사장님이 종업원 아주머니를 불렀는데도 대답도 하지 않으셨고, 사장님이 "제발 대답 좀 해라"라고 하시길래 사장님이 참 좋은 분이신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생각이 바뀌었다. 종업원 아주머니는 우리가 보통 접하는 고객 응대, 고객 서비스의 친절함과는 거리가 조금 있었지만, 그로 인해 나에게는 특이함, 편안함이라는 느낌을 갖게 만들었고, 그 손님 일행에게는 잠깐이나마 일상 속 즐거움을 주었다.

 

  CS(Customer Satisfaction, Customer Service)라는 게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리고 획일적 친절함은 더더욱 아니다. 나 또한 배고픔만을 해결하거나, 고객에 대한 친절함만을 원했다면 프랜차이즈 음식점에 들어가서 내 음식만 먹고 나왔겠지만 비 오는 날 분위기를 느껴보고자 추어탕 가게에 들어갔다. 조금 의외라는 느낌을 받기는 했지만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식사를 했다. 앞으로 개인 사업을 하고자 한다면 분명 생각해 볼 부분이다. 강남 한복판에 있는 추어탕은 그 지역 자체의 분위기에서 특이함을  느끼게 했으며, 종업원의 서비스 또한 외적으로 친절해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그 나름의 인간적 소통과 따뜻함이 있었다. 우리는 사람이고, 그렇기에 맛있는 음식을 섭취하는 것만으로는 만족을 극대화할 수 없다. 그 추어탕 집을 방문하는 많은 사람들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을 원하기에 다른 곳이 아닌 그곳에서 밥을 먹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식사를 하는데 공깃밥이 한 그릇으로 부족했다. 종업원 아주머니에게 슬며시 다가가 "밥이 부족한데요. 한 그릇 더 먹고 싶어요"라고 말하니 아주머니는 역시나 "응, 저기 있어"라고 말씀하셨다. 보온 통에서 공깃밥 한 그릇을 가져다가 자리에 돌아와 맛있게 먹었다. 비 오는 날 조선 시대 주막집에서의 정취를 한 껏 느낄 수 있어 정말 좋았다. 사람과 사람 간의 대화, 커뮤니케이션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진정 필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하였고, 커뮤니케이션 능력이야말로 내가 인생의 답을 구할 수 있는 무언가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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